포항공과대학교 채민우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채민우 교수는 통계학 및 데이터과학 이론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다양한 방법들의 근본 원리를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근본 원리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데이터 분석 방법론을 개발하고,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이나 산업체 등과의 협력을 통해 추천 시스템 개발, 제조 공정 개선, 수요 예측 등 현실적인 문제들도 다루고 있다.
[아이티데일리] 일반인에게 “과학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대부분은 학창 시절 배웠던 딱딱한 과목들을 먼저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이를테면 뉴턴의 운동 법칙(관성의 법칙, 힘과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나 만유인력의 법칙 정도가 반사적으로 기억날 수 있다. 과학을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전자기학의 다양한 법칙이나 화학 반응식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과학 소식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에 읽은 기사에서 본 과학 지식을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예컨대 특정 유전자의 생물학적 작용을 밝힌 연구, 우주선 소재에 쓰일 수 있는 신소재 개발, 혹은 특정 암을 억제하는 약물,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뉴스처럼 대중 친화적인 주제가 대표적이다.
과학적이라는 말에 담긴 ‘신뢰성’과 ‘객관성’
과학 기사를 읽다 보면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는 표현을 종종 접하게 된다. 이 표현은 과학 기사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도 흔히 쓰인다.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도 “이건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야” 같은 말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곤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모두 과학자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과학적 사실’이라는 말은 말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절대적인 진리, 혹은 거의 틀릴 리 없는 사실처럼 들린다. 이렇듯 “과학적”이라는 말에는 높은 신뢰성과 객관성이 자연스럽게 부여된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는 표현은 언제 써도 괜찮은 것일까? 그 표현은 절대적 진리, 혹은 그에 준하는 확실한 사실로 이해해도 되는 걸까? 우리가 알고 있는 뉴턴의 운동 법칙이나 만유인력의 법칙은 과연 그런 ‘진리’일까? 이런 질문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하다. 다만 대부분은 이런 고민을 잠시 하다가 곧 일상으로 돌아가곤 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과학자로서 필자가 생각하는 하나의 ‘정답에 가까운’ 관점을 소개해보려 한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물리학 법칙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뉴턴의 운동 제2법칙인 ‘힘과 가속도의 법칙’은 F=ma라는 간단한 수식으로 표현된다. 이 공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그 진위 여부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언뜻 보면 운동의 원리를 잘 설명하는 것 같지만 정말로 이 등식이 정확하게 성립하는지는 의심스러울 수도 있다. 대부분은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이 공식을 배우고, 일상적인 물체의 움직임을 설명하기에 꽤 그럴듯하다고 느낀다. 과학고등학교처럼 전문적인 교육기관에서는 실제로 이 법칙의 타당성을 실험으로 검증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실험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F=ma라는 등식이 정확히 성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지점에서 많은 이들은 ‘공기 저항’, ‘측정 장비의 오차’ 등 외부 요인들을 떠올리며, 이런 요소들이 수식에서 벗어난 결과를 만든 것이라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나아가 만약 이 모든 외부 요인을 잘 통제할 수 있다면, 실험 결과는 F=ma에 아주 가깝게 수렴할 것이라 기대한다.
교과서에 실릴 만큼의 이론이라면, 과거의 위대한 과학자가 엄격한 실험을 통해 얻은 ‘사실’일 것이고, 따라서 거의 진실에 가깝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추론 과정은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제부터는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앞서 언급한 실험에서, 만약 외부 요인들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면, 그때 얻은 실험 데이터는 과연 F=ma라는 등식을 정확히 만족할까? 아니, 애초에 ‘외부 요인을 완벽히 통제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해 필자는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여기서 ‘믿는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 글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기도 한데,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들의 믿음의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판단은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필자는 물리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겉핥기로나마 배운 지식에 따르면 양자역학에서는 물체의 운동량이나 위치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아무리 실험 환경을 정교하게 설계한다 하더라도, 물리량을 완벽하게 측정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이 말하는 바는 절대적인 진실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기서 잠시 미뤄두자. 분명한 것은, ‘완벽한 통제’나 ‘무한한 정밀 측정’은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이는 필자가 과학자로서 갖는 거의 절대적인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다시 첫 번째 질문을 되짚어보면, 그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불가능한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사과가 우주로 날아갈까?”라는 질문과 비슷한 셈이다.
“과학은 모델링이다”
요약하자면 현실에서 아무리 정교한 실험을 하더라도 F=ma라는 수식을 정확히 재현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공식은 여전히 많은 현대인에게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공식을 ‘과학적 사실’로서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과학에 대한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많은 이들이 과학을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라 생각하지만, 과학이라는 영역에서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의 관점에서 과학이란 모델링이다. 예를 들어 자연과학은 자연 현상을, 사회과학은 사회 현상을 모델링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면 물리학은 물체의 운동과 에너지, 힘 사이의 관계 등을, 생명과학은 생명체의 작동 원리를, 경제학은 경제 활동의 패턴을 모델링한다고 볼 수 있다.
모델링이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데, 쉽게 말하면 복잡한 현상을 수식으로 단순화하여 F=ma와 같은 공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필자의 지도교수님은 가끔 술자리에서 “과학은 모두 거짓말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필자가 여기에 양념을 조금 더 덧붙이자면, “과학은 아주 그럴듯한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이 이 말의 요지다. 여기서 ‘거짓말’이라는 표현은 과학의 본질이 ‘모델링’이라는 점을 유쾌하게 강조한 것이리라. 결국 과학이란, 복잡한 현실을 아주 잘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 또는 공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표현한 셈이다.
다시 F=ma라는 물리학 공식으로 돌아가보자. 이 수식을 실험적으로 정확히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간단한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F=ma라는 등식이 어느 정도 성립한다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다. 공기 저항을 줄이거나 보다 정밀한 측정 기기를 사용하는 등 외부 요인을 최대한 통제할수록, 실험 데이터는 F=ma에 더욱 가까워진다.
뉴턴은 과학계의 ‘성경’이라 불리는 ‘프린키피아(Principia)’에서 세 가지 운동 법칙을 제시했고, 그중 하나가 후대에 F=ma의 형태로 정리됐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등식이 성립하는지를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적어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수준의 물리 현상, 예를 들면 물체의 운동이나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천체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이를 반박할 만한 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실로 (만유인력의 법칙과 함께) 뉴턴의 세 가지 운동 법칙은 너무나 정교해, 현실 세계에서 비교적 간단히 관측할 수 있는 대부분의 물리 현상들을 매우 잘 설명해낸다.
수많은 사람들의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F=ma라는 수식과 뉴턴의 운동 법칙, 그리고 만유인력의 법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학적 진실로서의 권위를 얻게 된다. 이 법칙들은 점차 하나의 패러다임(어떤 시대나 분야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인식의 틀과 사고방식의 체계)으로 정착해 나가게 됐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이러한 법칙들에 대해 절대적 진실에 준하는 정도로 믿음을 가져 나간다는 것이다.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 여러 모델 또는 이론이 존재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과학이란 자연 현상이나 사회 현상 등 특정한 현상을 모델링하는 활동이다. 우리가 모델링을 하는 이유는 결국 과학의 본질로 귀결된다. 과학이란 특정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며, 복잡한 현상을 수식화해 모델로 표현함으로써, 현상 자체를 직접 관찰하는 것보다 더 깊고 본질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나아가 이러한 본질적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다양한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뉴턴의 운동 법칙에 기반해 비행기를 만들고, 우주선을 쏘아 올렸으며, 생명 현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현대 의학의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한편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여러 모델 또는 이론이 존재할 수 있다. 어떤 모델이 더 타당하고 현실에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중요한 역할이다. 특정 현상에 대해 이론적 모델과 실험적 연구가 반복적으로 수행되면서, 과학은 점차 발전해나간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 과학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도출되고, 대다수 과학자가 동의하는 모델이 그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는다. 현대인들이 절대적 사실에 가깝다고 믿는 뉴턴의 운동 법칙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특정 모델이나 이론이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과학적 사실로서의 권위가 영원히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의 핵심은 모델링에 있으며, 특정 현상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설명해내어 대다수 사람들의 믿음 또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가가 중요하다. 많은 경우, 특정 모델이나 이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관련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이다. 따라서 얼마나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지가 정교한 모델링을 위해 필수적이다.
특정 모델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데이터’
예를 들어 F=ma라는 운동 법칙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특정 힘을 가했을 때 물체의 위치를 시간에 따라 측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해지는 힘의 크기 조절, 위치의 정밀 측정, 정확한 시간 기록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고도의 정밀한 장비가 필수적이다. 또한 진공에 가까운 상태에서 실험을 진행할수록 더욱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과학자들은 더 정밀한 측정 장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더욱 고품질의 실험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과거의 불완전한 환경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모델의 오류를 발견하고, 기존 패러다임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뉴턴의 운동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아우르는 뉴턴 역학 또한 그러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대부분의 운동은 뉴턴 역학으로 매우 잘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고도로 정밀한 장비를 통해 분자나 원자 수준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뉴턴 역학의 공식들이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발견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물리학 모델을 연구하고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양자역학이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 탄생했다. 양자역학은 뉴턴 역학을 아우르면서도, 뉴턴 역학이 설명하지 못했던 현상들까지 포괄하는 현대 물리학의 토대를 이루는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이 됐다.
양자역학 또한 모든 물리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기술로 관측할 수 있는 대부분의 현상에 대해서는 매우 높은 설명력을 보이며, 과학자들 사이에서 강한 신뢰를 얻고 있다. 많은 일반인들은 이를 절대적 진리처럼 받아들이지만,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과학의 본질, 즉 과학은 본질적으로 모델링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양자역학 역시 현실을 매우 정교하게 설명하는 하나의 훌륭한 모델로 받아들일 것이다.
“과학은 완벽한 답을 약속하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과학 뉴스들을 떠올려보자.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신약 개발, 불면증을 앓는 사람은 음모론에 취약하다는 주장, 또는 우울증 치료에 있어 인터넷 사용을 줄이는 것이 항우울제보다 효과적이라는 기사들까지, 다양한 내용들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는 표현과 함께 전달된다.
“불면증을 앓는 사람은 음모론에 취약하다”는 주장은 직관적으로는 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는 문구를 본 독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적 검증’은 하나의 이론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관련 논문이 출간됐다는 사실, 혹은 단일 연구 결과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학술 논문을 접할 기회가 적은 일반 독자 입장에서, ‘논문에서 밝혔다’는 표현은 상당한 신뢰를 유도하며, 특히 사이언스(Science)나 네이처(Nature)처럼 권위 있는 저널에 실린 연구라면 그 신뢰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과학적으로 검증되다’는 표현이 곧 절대적 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저명한 학술지에 실린 논문조차도 종종 오류가 발견되곤 한다. 그 원인은 다양하다. 실험 데이터를 얻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고, 모델을 유도하는 이론적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수도 있다.
현대의 논문 출간 시스템은 저자가 논문을 투고하면 평균적으로 2~3명의 전문가가 이를 심사하는 구조다. 이들은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지만, 연구와 교육 등으로 매우 바쁜 경우가 많아 모든 논문을 꼼꼼하게 검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 현재의 논문 심사 시스템은 저자의 학문적 양심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으며, 매우 엄밀한 검증이 이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권위 있는 학술지일수록 심사 과정이 비교적 더 엄격하기에, 그 권위는 상당 부분 유지된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현대의 논문 시스템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류가 있는 논문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찾아내고, 이를 개선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곧 과학이라는 점이다.
과학은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는 활동이 아니다. 과학은 현실을 더 정밀하게 이해하기 위한 모델을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며, 특정 이론이나 법칙이 한때 절대적 진리처럼 받아들여질 수는 있지만, 새로운 관찰과 연구가 이루어질 때마다 기존 모델은 수정되거나 폐기되기도 한다.
과학은 이러한 의심과 검증, 개선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갱신해 가는 지식의 여정이다. 우리가 과학을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완전한 진리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더 깊고 정교하게 설명하려는 인간의 지속적인 노력을 바라보는 일이다.
과학은 완벽한 답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끊임없는 질문과 탐색의 과정 자체가 진리에 가까워지는 길을 열어준다.
출처 : [아이티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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